Afleveringen


  • 법화경은 여러 품들이 모여 하나의 경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보문품은 그 여러 品들중의 하나입니다.
    관세음보살 보문품은 관세음보살의 중생들에 대한 대자비심을 자신의 신통자재한 법력과 가피력을 드러냄으로써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타종교신자들은 단순히 이점을 보고 몰상식하게 관음보살이 성모마리아라고 하거나 혹은 관음보살을 신과 같은 존재로 인식하는 왜곡된 견해를 주장하기도 합니다만, 이것은 한마디로 몰상식한 생각입니다.

    대승불교에서 흥기한 보살사상을 간략히 알아보면 남방 상좌부 불교인 부파시대의 불교에서는 이러한 보살사상이 없습니다. 보살사상은 대승불교권에 오면서 차츰 발생된 것입니다. 보살이라는 말의 원어는 '보디사트바'로 깨달음을 향해가는 중생을 말합니다. 그러니 누구나 깨달음을 구하고자 노력하는 보리심을 낸 불자라면 누구든지 보살이 되는 것이지요. 물론 한국불교에서는 여성 재가불자를 주로 보살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을 꼭 틀렸다고 단언할수는 없습니다. 이유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죠. 깨달음을 향해 간다면 누구나 보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또한 이 보살은 자신과 남이 둘이 아니라는 대자비심으로 나만큼 남도 함꼐 아끼며 함꼐 슬퍼하고 기뻐합니다.


    물론 보문품의 주인공인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과 같은 보살님들은 사실 일반적인 중생이 보리심을 내어 깨달음을 구하고자 정진하는 것과는 다소 그 의미가 틀립니다. 이러한 보살님들은 사실상 부처님의 경지에 오른분들이나 다름없지만 보살의 지위에 남아 있습니다. 이유는 이분들은 대 자비심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것 자체가 자신이 성불하는 방법입니다. 지장보살처럼 지옥중생이 텅 빌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서원한 것처럼 이 보살님들은 자신의 일보다 사실 중생을 고통과 번뇌로 부터 제도하는게 더 중요한 것이지요.
    이 분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화현이라고 보면 됩니다. 대승불교에서 보살사상이 등장한 것은 나와 남이 모두 최상의 행복인 니르바나로 가자라는 취지도 있지만, 사실 일반 세속의 신자들이나 서민에게 거룩하신 대성자이신 석가모니부처님은 너무나 고귀하여 우리같은 중생들과는 거리감이 있어 그저 존경의 대상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보니 좀 더 중생들이 다가가기 쉬운 불교적 모델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같은 보살님들입니다.

    대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은 부처님의 대자비심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보살님이시고,
    부처님꼐서 성불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성도후 평생을 전법에 삶을 쓰신것 처럼 오로지 중생구제를 위한 대 원력을 표현하는 것은 바로 지장보살님입니다.

    또한 부처님께서 꺠달음신 최상의 비교할바 없는 법(다르마 또는 담마라고 함)은 대지혜(단순한 지식이 아님)를 상징하는 보살님이신 문수보살님이 담당하고 계시고,
    부처님꼐서 단순한 깨달음에 머무신 것이 아니라 중생들을 위해 그 깨달음을 손수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그 꺠달음에 근거한 자비행을 직접하신것 처럼, 그러한 큰 행동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보살님이 보현보살님입니다.

    이 밖에도 대승에서는 미륵보살과 같이 수많은 보살님들이 계시고
    석가모니 부처님 이외의 수많은 부처님이 계시는 다불사상도 대승불교에서 꽃피게 됩니다.

    이 다불사상은 누구나 수행하고 노력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대승불교의 핵심사상의 하나인 불성사상에 기초한 것입니다. 법화경은 이러한 중생도 성불할수 있다는 불성사상을 깊이 담고 있는 경전입니다.
    결국 중생들이 보리심을 내어 수행하어 정진하여도 그 끝은 깨달음을 얻은 부처라는 것이 법화경의 결말입니다.

    내가 꺠달음을 얻은 부처가 된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쉽게 단념하지요.
    절에서 수행하는 스님들 조차도 될까 말까 한 일을 세파에 찌든 내가 감히 부처가 된다니...
    보통 이렇게 많이들 생각하시지요.
    하지만 법화경은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법죄자들도 다 불성이 있어서 비록 인연이 불선하여 범죄를 저질렀지만 충분히 참회하고 선업을 지어가면 조금씩 자신이 지은 업이 맑아지고 원래 가지고 있던 부처가 될수 있는 가능성을 드러낼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 참회라는 개념은 기독교의 회개와는 전혀 다른 의미 입니다.

    어쩄든 아예 해보지도 않고 섣불리 안된다는 생각과 태도는 절대 성불의 길로 갈수 없음을 단정짓는 것을 법화경을 비롯한 대승경전 곳곳에서 강조되고 있지만 특히 법화경은 이 점을 극명히 잘 드러내는 경전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알고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이해한다면 어떨까요? 그래도 관음보살을 왜곡하고 곡해해서 마구잡이로 이야기 할건가요?
    관세음보살보문품을 통해서 불자들에게 순수하고 청정한 그리고 지극한 신심을 내어 관음보살을 염불할 것을 권합니다. 이 지극한 신심이 인연이 되어 성취와 완성이라는 결과가 생기는 것입니다. 간혹 기도 영험담을 보면 보문품을 읽고 기도공덕을 봤다는 분들은 물론 관음보살 가피력도 있지만 거기에 자신의 지극한 신심이 더해졌기 때문일것입니다. 또한 불보살은 직접 그 현신으로 법을 설하지 않습니다. 허공에서 소리가 들린다던지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데 영상으로 부처님이 보인다던지....하는 것은 바른 상태가 아닙니다. 관음보살 보문품에" 관음보살님은 비구의 몸으로 성불할 이에게는 비구로 몸을 나투어 법을 설하며..."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것은 바로 불보살님은 법을 설할 때 직접 나타나시는것이 아니라 주변을 통해서 그 법을 드러냅니다. 주변의 모든 것이 알고 보면 나의 선생님이죠. 부처님이고...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잘났다는 아상이라는 것이 있어서 주변의 말을 간과하거나 수용하기를 거부합니다. 또한 관음보살이 왜 관세음이라 이름지어졌는지 그 연유에 대해서는 설하고 있는데, 관세음보살은 세간에서 들리는 중생들의 고통의 소리를 잘 관찰하시고, 중생들을 그 괴로움으로부터 건져주신다는 겁니다. 대승의 능엄경을 보면 관세음보살 이근원통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천연고찰같은 곳을 가보시면 원통보전이라는 말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 원통보전의 원통이 바로 관음보살의 원툥함을 따서 이름지은 법당입니다. 핵심은 관음보살은 소리를 통해서 석가모니부처님이 설하신 핵심가르침에 정통하여 부처님의 경지와 같은 하지만 중생구제를 위해 머무르는 보살이 되신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속으로든 소리내어서든 관세음보살하고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그 소리를 듣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능히 건져주신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불러도 제 자리이고 별 다를게 없습니다. 왜 그렇죠?"

    그럼 저는 이렇게 되묻습니다.

    "얼마나 깊은 신심으로 얼마다 통일된 정신과 마음으로 관음보살을 염불하거나 부르고 기도하셨습니까?
    정말 간절헀나요? "
    기도가피를 마치 순식간에 얻으려는 분들은 기본자세 자체가 안되어 있는 분들입니다.
    소위 속된말로 날로 먹으려는 분들이지요. 세상에 거져되는 것은 없습니다.
    또한 불교는 무조건적인 절대복종에 의한 추종과 기도와는 거리가 멉니다.
    기도에만 매달리고 부처님, 관음보살에게만 매달리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기도만큼 중요한 것이 현실에서의 자신의 노력과 의지 그리고 행동입니다.
    기도와 더불어 자신이 지금 상활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방법인지 생각하고 행동하여야 합니다.
    당장 기도하면 모든 것이 다 잘 풀릴것이라는 생각은 큰 오산입니다.
    불교는 기복적 신앙도 아니며 단순한 절대복종과 추종에 따른 구원신앙도 아닙니다.
    기도와 더불어 현실에서 자신의 사고의 전환과 바른 견해를 행동으로 하는 것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지금 당장 나의 앞일이 안 풀리는 것은 자신이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기 전 오랫동안 윤회하며 지어온
    불선업 때문입니다. 이 좋지 않은 선하지 않은 업력으로 인해 갖은 고난이 있는 것입니다.
    불보살님을 지극정성 일심으로 염불하면 그 좋지 않은 업력이 조금씩 조금씩 줄어드는데
    하물며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긴 경전은 말할 것도 없지요.
    대승의 경전들은 다소 표면적인 이해를 하면 그 본 내용을 왜곡하여 이해할수 있는 소지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부연설명을 해놓은 주석서나 강의서를 보신느 것이 좋습니다.
    단지 요즘은 출판을 경제적 여건이 되면 누구나 할수 있는 자유가 있고
    경전해석이나 강의도 다소 주관적으로 가는 경향이 있어
    주변의 눈밝은 스님들 수행을 정도로 하신 스님들이 권장하는 책을 읽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법화경의 일부이긴 하지만 보문품은 대승불교에서 기도독송용으로 매우 많이 읽혀지는 경전이므로
    이 경전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염두에 두고 지극정성으로 청취하시어 무량한 복덕을 쌓으시고
    모두 궁극의 행복인 니르바나(열반)으로 갈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인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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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나름대로 어렵지 않게 잘 설명해둔 책이 있어서 추천합니다.

    제목: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저자: 이미령
    출판사:불교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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